[대전시민뉴스 김경찬 기자]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조성된 지 50여 년이 지나면서 연구개발 중심으로 설계된 각종 규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구개발 성과를 사업화하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특구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지만 과거 연구단지 조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토지·건축물 관련 규제가 기업의 시설 확충과 자산 활용 등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청투데이에 따르면 현행 연구개발특구법은 연구용지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투기성 거래를 막기 위해 특구 내 토지와 건축물의 양도가격, 입주 대상, 용도 등을 제한하고 있다.
당초 정부출연연구기관 중심의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부동산 투기 등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지만 연구개발 성과가 사업화와 기업 성장으로 연결되는 현재의 산업 구조에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규제로 인한 성장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위성기술 기업 쎄트렉아이는 지난 20여 년간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하면서 제조공장과 시험시설, 연구공간은 물론 500여 명의 임직원을 위한 추가 시설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회사 바로 옆에 약 3000평 규모의 부지가 있음에도 이를 필요한 용도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연구 및 사업화시설구역의 부지 용도가 연구개발 시설 등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기업은 본사와 떨어진 둔곡지구에 3000평 규모의 부지를 별도로 분양받아 제조공장과 실험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택했다.
김이을 쎄트렉아이 대표는 “회사 바로 옆 3000평의 부지가 있음에도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니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타지역 이전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20년 넘게 자리 잡은 데다 500명에 달하는 인력이 이동하는 것도 무리였다”고 말했다.
대덕특구 1지구에 입주하려는 기업들도 현행 규제로 부지 활용과 거래가 제한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준희 코셈 대표는 “대덕특구 1지구는 출연연과 가장 가깝고 위치상 가장 매력적인 지역”이라며 “활용되지 못하는 부지가 있어도 규제 때문에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죽은 자산’처럼 남아 있다. 법이 개정된다면 가장 먼저 1지구로 갈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가 장기적으로 대덕특구의 기업 유치 경쟁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정묵 대전상장사협의회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비용을 투자한다면 자산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현재와 같은 규제가 계속된다면 기존 기업은 물론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는 데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 유성을)은 지난 3월 연구개발특구 내 부지와 건축물의 양도가격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연구개발특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은 뒤 5년 이상 실제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수행한 기업에 대해서는 양도가격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해 기업의 자산 활용과 투자 여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국가 예산으로 조성된 연구개발특구의 공공성을 훼손하거나 부동산 투기와 시세차익을 위한 거래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실제 연구개발을 수행한 기업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황 의원은 “전부 풀거나 전부 막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연구개발을 수행한 기업을 중심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라며 “공공성과 기업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 동구)도 연구개발 성과가 사업화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양도가격 제한 합리화와 국가전략기술 기업 유치, 실증 확대, 공간 규제 개선 등을 담은 별도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규제 개선을 출발점으로 대덕특구의 역할 자체를 연구개발 중심에서 기업의 사업화와 성장까지 뒷받침하는 혁신 생태계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덕특구는 출연연과 KAIST 등을 기반으로 연구개발과 기술창업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기업이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접어들어 생산시설 확충과 대규모 투자 유치가 필요해지면 지역 내에서 이를 뒷받침할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명재 KAIST 창업원 교수는 “대전은 연구개발에는 최적의 환경이지만 성장 단계에서 필요한 투자와 제조 기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규제 개선을 시작으로 기업이 생산과 사업 확장까지 지역 안에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전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연구개발 자산을 가진 도시”라며 “이제는 연구개발 이후 기업이 성장하고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대덕특구의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결국 향후 제도 개선의 관건은 연구개발특구의 공공성과 투기 방지라는 기존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수행하는 기업의 성장 공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참고기사]
충청투데이 조정민·손지원 기자, 「50년된 대덕특구 규제 손질…R&D 사업화 길 연다」, 2026년 7월 29일
충청투데이 조정민·손지원 기자, 「성장까지 고려한 기업 정착 생태계 필요 [50년 규제 가로막힌 대덕특구]」, 2026년 7월 29일
충청투데이 조정민·손지원 기자, 「기업 대출 막는 ‘특구법’ 공공성의 아이러니 [50년 규제 가로막힌 대덕특구]」, 2026년 7월 29일
충청투데이 조정민·손지원 기자, 「대덕특구 땅 많은데 "규제 탓에 이사" [50년 규제 가로막힌 대덕특구]」, 2026년 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