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다만 필요한 물품이 하나 더 있으니, 지정된 업체에서 먼저 구매해 주십시오.”
평범한 소상공인에게는 반가운 거래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이름으로 전달된 명함과 계약서, 이메일 속에는 실제 발주가 아닌 치밀하게 설계된 사기 범행이 숨어 있었다. 국내 소상공인 192명에게 약 100억 원의 피해를 입힌 국제 노쇼사기 조직이 대구경찰청의 수사로 적발됐다. 범행의 무대는 베트남이었지만 피해가 발생한 곳은 대한민국 곳곳의 상점과 사업장이었다.
대구경찰청(청장 박준성)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2일 베트남에 거점을 두고 공공기관 직원을 사칭해 금품을 가로챈 혐의로 한국인 총책 A씨 등 16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1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범죄단체조직·활동,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조직의 역할 분담과 범행의 계속성 등을 확인해 12명에게는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를 추가했으며 범행에 사용된 계좌를 양도한 4명도 검거했다.
공공기관의 명함과 계약서까지…‘신뢰’를 미끼로 삼은 범죄
경찰에 따르면 조직은 2025년 9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베트남 하노이와 하이퐁 등에 범행 거점을 마련했다. 이들은 공공기관 직원을 사칭해 국내 도·소매업체에 대량 물품을 주문한 뒤, 소화방화포나 질식소화포 등 소방용품을 특정 업체에서 대신 구매해 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공공기관 명의의 명함과 계약서를 이메일로 전송하기도 했다. 실제 공공기관과의 거래를 기대한 소상공인들은 정상적인 발주로 오인하기 쉬웠다. 이른바 ‘노쇼사기’로 불리는 범행이지만, 단순히 예약을 취소하거나 주문한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수준을 넘어선다. 존재하지 않는 거래를 만들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제3의 거래를 가장해 돈을 송금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이러한 수법은 이미 전국적인 범죄 예방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3월 경찰청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노쇼사기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9월에는 금융당국·금융권과 함께 선결제와 대리구매 요구에 주의할 것을 알리는 공동 캠페인을 진행했다. 최근 노쇼사기가 단순한 예약 부도에서 공공기관·군부대·소방기관 사칭, 물품 대리구매와 선입금 유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IP 기록에서 국제공조까지…대구경찰청의 끈질긴 추적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범죄조직의 해외 거점과 전국에 흩어진 피해 사건을 하나의 수사로 연결한 과정이다. 대구경찰청은 2025년 9월 최초 피해 신고를 접수한 이후 범행에 이용된 IP 접속기록 등을 분석해 조직원들을 특정했다.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유사 피해를 확인하고 총 192건을 병합 수사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피의자들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검거했고 해외 체류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와 베트남 공안과의 공조를 추진했다. 경찰은 조직이 한국인 총책을 중심으로 관리책, 인력수급책, 전화유인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범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수사 과정에서 조직의 체계와 역할 분담, 범행의 계속성을 확인한 것도 중요한 성과로 단순히 사기범 몇 명을 붙잡는 데 그치지 않고 개별 피해 사건의 배후에 있는 조직적 범행 구조를 추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구경찰청은 추가 공범과 여죄를 계속 수사하고, 해외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에 대한 국제공조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발표 당시 검거 대상 중 1명은 베트남에서 송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순 사기 넘어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영상=법무법인 대련(김범식 대표변호사) 유튜브 채널.
이번 사건의 핵심 법률 쟁점은 개별 사기행위뿐 아니라 조직 자체의 형사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에 있으며 법무법인 대련 김범식 대표 변호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사기죄에 대해 설명하였다.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공공기관의 정상적인 발주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에게 물품 구매대금을 송금하게 했다면, 구체적인 기망행위와 처분행위, 재산상 피해 및 고의 등을 중심으로 사기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형법 제114조의 범죄단체 등의 조직에 관한 규정은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활동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다만 여러 명이 함께 범행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범죄단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목적과 체계, 구성원 사이의 역할 분담, 계속적인 범행 수행을 위한 결합관계 등 구체적인 사정을 살펴야 한다. 대구경찰청이 이번 수사에서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를 추가한 것은 개별 사기 범행을 넘어 조직의 구조와 운영 방식까지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향후 재판에서는 경찰이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각 피고인의 구체적인 가담 정도와 혐의 성립 여부가 판단될 전망이다. 범행에 사용된 계좌를 양도한 사람의 책임 역시 별도로 살펴야 한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여부와 함께 사기 범행을 인식하고 가담했는지에 따라 형사책임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식 변호사 “국경을 넘은 범죄를 끝까지 추적한 대구경찰청의 수사에 경의”
법무법인 대련 김범식 대표변호사는 이번 검거 성과에 대해 “국내 소상공인들의 피해 신고를 출발점으로 해외 범죄 거점까지 추적해 조직의 실체를 밝혀낸 대구경찰청 수사관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라며 “전국에 흩어진 피해 사건을 연결하고, 디지털 증거 분석과 국제공조를 통해 조직적인 범행 구조를 추적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수사 성과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전 피해를 넘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와 소상공인의 생업을 범행에 악용했다는 점에서 엄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주목했으며 다만 검거와 구속이 곧 유죄 확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향후 형사절차에서도 각 피의자의 책임이 객관적인 증거에 따라 판단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범죄조직을 검거한 이후에도 피해금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회수 가능한 재산은 남아 있는지 끝까지 추적하는 일이 중요하며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필요한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피해회복 절차에 대한 안내와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법조계는 전하였다. 김범식 변호사는 노쇼사기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이 거래 상대방과 주고받은 이메일, 명함, 계약서, 계좌이체 내역, 문자메시지 및 통화기록 등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와 내 지인이 사기 피해가 의심되거나 공범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상대방에게 추가 송금하지 말고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송금한 금융기관에도 신속하게 연락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해당 거래가 지급정지나 피해구제 절차의 대상이 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기 피해금이 자동으로 환급되는 것은 아니다. 범행 유형과 송금 경위, 계좌 상태, 적용 법률 등에 따라 피해구제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으며, 형사절차와 별개로 손해배상청구나 재산보전 등 민사적 대응을 검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공공기관 명의의 문서가 있다고 해서 거래의 진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대리구매나 선입금 요구를 받았다면 상대방이 알려준 번호가 아닌 해당 기관의 공식 연락처로 발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미 피해가 발생했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경찰에 신속히 신고하고 필요하다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와 피해금 회복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수사는 대구경찰청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조직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역량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16명 검거라는 성과가 곧 모든 피해의 회복이나 범죄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찰이 추가 공범과 여죄를 추적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피해금의 최종 행방은 어디인지, 범죄수익은 얼마나 환수할 수 있는지, 해외에서 활동하는 다른 공범이나 유사 조직은 없는지에 관한 수사 결과가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의 양면성도 드러냈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컴퓨터는 정상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도구다. 동시에 범죄자에게는 신분을 위장하고 국경을 넘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베트남 거점 노쇼사기 조직의 검거 소식이 전해진 지금도, 또 다른 범죄자는 새로운 기관의 이름을 빌리고, 더 정교한 계약서를 만들고, 새로운 피해자를 설득할 문장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범죄 수법은 달라져도 그 출발점에는 대개 한 가지가 있다. 상대방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검거일 뿐 범죄의 시나리오는 계속되고 있으며 또 다른 피해의 시작이 되지 않도록, 경찰의 수사와 시민의 경계, 법률적 대응은 검거 이후에도 예방과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국|종합=정영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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