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뉴스 김경찬 기자] 지난 8월 5일 오후 대전 유성구의 한 상가 앞.
기자가 흰색 실선이 그어진 도로 가장자리에 차량을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량 세워놓으셨잖아요. 차 좀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인근에서 영업 중인 상인이었다.
차량을 세운 곳은 흰색 실선이 이어진 공공도로였다. 건물 외벽에는 '매장 앞 주차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도로 가장자리에는 타이어와 주차봉 등이 놓여 있었다.
공공도로였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운전자들에게 배려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기자는 상인에게 일반 차량의 주차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를 물었다.
상인은 "생계가 달린 문제다. 손님들이 이용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도의적으로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구간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변경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할 의사가 있는지 묻자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희 손님들도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상가 손님들도 함께 이용하는 곳이다. 서로 생계가 달린 문제인 만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상인은 도로의 이용 방식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기보다 상권을 찾는 이용객들이 서로 배려하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소상공인도 "영업 중인 가게 앞에 차량을 세우면 영업방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관할 행정기관의 주정차 담당 부서에 문의했다.
관계자는 "취재한 해당 흰색 실선 구간은 원칙적으로 주차가 가능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량이 상가 출입구를 막거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경우에는 현장을 확인한 뒤 차량 이동을 요청하거나 행정지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능하면 당사자 간 양해를 구해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흰색 실선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차량을 강제 이동시키거나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을 확인한 뒤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영업방해 여부는 주정차 단속 부서에서 판단하는 사항이 아니라 경찰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상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 실제 행정 절차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또 다른 쟁점은 공공도로 위 적치물이었다.
현장에는 타이어와 주차봉 등이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라바콘과 화분, 물통, 타이어 등 도로 위 적치물 문제는 주정차 단속이 아닌 도로관리 업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무단 적치물 여부는 담당 부서가 현장을 확인한 뒤 계도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차량과 적치물은 담당 부서도 달랐다.
주정차는 행정기관이 관리하지만 도로 위 적치물은 건설과 부서가 담당하고 통행방해나 영업방해 여부는 경찰이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구조였다.
흰색 실선을 황색선으로 변경하는 절차도 단순 민원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노면 표시 변경은 경찰의 교통안전시설 심의를 거쳐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토한 뒤 결정되는 사항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된 것은 법과 현실의 간극이었다.
법은 공공도로의 흰색 실선을 원칙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고 있었다.
반면 현장에서는 상인들이 생계를 이유로 다른 운전자들의 배려를 요청했고 행정기관 역시 명확한 위반 사항이 없는 경우에는 강제적인 제재보다 협조와 조정을 우선 안내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제재보다 협조와 배려를 통해 갈등을 풀고 있었다. 다만 배려를 요구하는 것과 타이어나 주차봉 등으로 공공도로 이용을 사실상 제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생계를 위한 요청이 시민의 이용권을 넘어 암묵적인 전용공간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공공도로 이용 기준과 현장 관리가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공도로는 누구의 공간이어야 할까. 하나의 흰색 실선을 사이에 두고 시민은 이용권을 이야기했고 상인은 생계를 이야기했다. 이번 취재는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