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대포통장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통장 하나를 넘겨주고 대가를 받는 단순한 범죄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보이스피싱과 불법도박 등으로 만들어진 범죄수익을 여러 계좌로 분산하고 다른 금융수단으로 전환해 자금의 출처를 희석하는 이른바 ‘자금세탁’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대구와 대전을 무대로 대포계좌를 모집·관리해 범죄조직에 공급한 광역 유통망을 적발했다.
특히 대구경찰청은 대포계좌 72개를 모집한 공급책과 관리책, 모집책 등 46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거해 이 가운데 17명을 구속하고 해외 체류 중인 계좌 관리책 1명을 인터폴 적색수배했다. 대구와 대전 지역 조직폭력배 5명도 유통 과정에 개입했으며 일부는 조직원의 이탈을 막거나 범죄자금을 가로챈 관리책을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시민뉴스 정영인 기자] 범행의 구조는 상당히 조직적이었다. 모집책은 지인이나 메신저 광고를 통해 계좌 명의자를 끌어들였고 관리책은 계좌 접근매체를 넘겨받아 대가를 지급했으며 공급책은 이를 다시 보이스피싱과 불법도박 조직에 연결했다. 계좌 한 개에 지급된 대가는 200만~500만원에 달했으며 수사기관의 추적에 대비해 “텔레그램 대출광고를 보고 신용점수를 높이기 위한 거래실적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상대방과 텔레그램으로만 연락해 신원을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진술 시나리오까지 미리 교육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실제 피싱과 도박범죄에 사용된 계좌는 19개, 이를 통해 세탁된 것으로 확인된 자금만 약 19억원이며, 경찰은 나머지 계좌 역시 범죄수익을 여러 단계로 이동시키는 ‘N차 계좌’로 활용된 것으로 보고 계좌인증용 휴대전화 46대를 압수하는 한편 유통자금과 상위 범죄조직을 향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수사가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46명을 검거했다는 숫자보다 범죄수익이 지역과 역할을 넘나들며 이동하는 경로를 추적했다는 데 있다. 보이스피싱이나 불법도박처럼 시민의 일상을 직접 침해하는 범죄는 범죄자가 피해금을 받아내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안전하게 빼내고 세탁할 수 있는 계좌가 확보돼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포계좌 공급망을 차단하는 것은 범죄의 말단을 검거하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대구와 대전을 오간 이번 사건처럼 범죄조직이 행정구역을 경계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지역을 넘어선 신속한 정보 공유와 수사기관 사이의 유기적인 소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경찰의 자금추적 역시 개별 계좌 명의자에서 멈추기보다 공급책과 관리책, 최종 범죄조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으로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시민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대가를 받고 통장을 직접 넘기는 전형적인 대포통장 범죄만은 아니다. 이번 사건의 계좌 명의자들은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가담했고, 일부는 이후 다른 명의자를 끌어들이는 모집책으로까지 역할을 확장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최근의 금융범죄에서는 중고거래나 환불, 송금착오, 간편결제 충전, 상품권 구매처럼 일상적인 거래의 외관을 이용해 제3자의 계좌를 자금 이동의 중간 단계로 끌어들이는 상황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카카오페이 충전이 되지 않으니 10만원을 보내줄 테니 대신 충전해 9만5000원만 돌려주고 5000원은 가져가라”는 식의 제안은 표면적으로는 소액의 수고비를 받는 단순한 심부름처럼 보이지만 최초 입금된 돈이 보이스피싱 등 범죄피해금이라면 자신의 계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수익의 경유지로 이용되고 지급정지나 수사기관의 확인 대상이 되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거래에 관여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형사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책임 여부는 범죄자금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거래의 반복성과 대가, 상대방의 요구내용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영상=법률자문 및 인터뷰 협조. 법무법인 대련 김범식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대련 김범식 대표변호사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수사기관의 검거와 금융추적 역량이 정교해지는 것과 동시에 범죄조직 역시 하나의 계좌에 위험을 집중시키기보다 자금 이동경로를 여러 단계로 분절하고, 중고거래나 상품권·간편결제처럼 정상적인 경제활동의 서사를 덧씌우는 방향으로 수법을 변형하고 있다”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다시 다른 계좌로 보내거나 상품권·충전금 등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수수료가 얼마인지보다 왜 이 돈이 굳이 내 계좌를 거쳐야 하는지 먼저 묻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방교육의 범위 역시 성인 금융소비자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특히 청소년에게 통장을 빌려주면 안 된다는 추상적인 경고만 반복하기보다 “친구들 통장 몇 개를 모아오면 돈을 주겠다”, “네 계좌로 받은 돈을 게임 머니로 충전해서 보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또래 관계나 학교 내 위계를 이용한 강요가 개입될 경우 처음에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던 청소년이 다른 친구의 계좌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되는 복합적인 상황도 상정할 수 있는 만큼, 부모와 교사, 학교전담경찰관을 중심으로 한 조기 발견과 금융범죄 예방교육이 중요하다.
다만, 이번 대구경찰청 수사에서 실제 중·고등학생이 이 같은 방식으로 동원됐다는 사실은 제공된 보도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으므로 청소년 문제는 이번 사건의 수사결과가 아니라 향후 지역사회가 대비해야 할 예방적 과제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대전경찰청 외부 전경
대구경찰청은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과 불법도박, 불법대부업 등 여러 민생침해범죄에 필수적인 수단으로 악용되는 만큼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 명의의 통장·체크카드·OTP·인증서 등을 타인에게 양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수사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범죄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치안 역시 검거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라며 "경찰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범죄수익의 흐름을 추적하고 금융기관이 이상거래를 포착하며 학교와 가정이 청소년에게 구체적인 금융범죄의 언어를 가르치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계좌를 통과하는 낯선 돈의 출처를 한 번 더 묻는 교육이 함께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범죄조직이 72개의 계좌를 만들었다면 경찰은 그 72개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치안은 73번째 계좌가 범죄의 길목에 들어서기 전에 멈추게 하는 것이다.
“혹시 나도 공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질문 하나를 시민과 부모, 교사와 청소년이 습관처럼 던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대구와 대전을 넘어 오늘의 민생범죄를 막는 가장 촘촘한 방어망일 수 있다.

자료제공=대구경찰청, 대전경찰청
자문=김범식 변호사(법무법인 대련 대표)